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밥 페이즐리 (문단 편집) === 감독 경력 === 1974년 FA컵 결승에서 우승한 뒤 샹클리는 예기치 않은 은퇴를 선언하였고, 리버풀은 팀을 이끈 리더쉽의 연속성을 유지하기 위해 페이즐리를 그의 후임 감독으로 임명하였다. 페이즐리는 특유의 겸손함으로 처음에 감독직을 맡는 것을 꺼려 샹클리를 찾아가 은퇴를 만류하기도 해보았으나 샹클리는 결심을 굳힌 뒤였고, 그에게 최선을 다하라는 격려만을 남겼다. 이후 그가 적임자라는 구단 내외부의 의견이 이어졌고 결국 페이즐리는 리버풀의 정식 감독으로 부임하게 된다. 페이즐리는 샹클리의 유산을 이어받아 곧바로 전성기의 연속을 위해 힘쓰기 시작했다. 페이즐리는 1974-75 시즌에 [[필 닐]]과 [[테리 맥더모트]]를 영입하여 [[채리티 실드]]를 우승한 뒤 곧장 리그 레이스를 내달렸는데, 초반에 좋은 흐름을 이어갔으나 승점 2점차로 [[더비 카운티]]에 이어 아쉬운 리그 2위를 차지하게 된다. 해당 시즌 페이즐리의 리버풀은 FA컵과 리그컵에서 모두 조기 탈락했고 컵위너스컵에서도 탈락의 고배를 마시면서 3년 만에 트로피 없는 시즌을 보내게 되었다. 하지만 페이즐리는 무너지지않고 다음 시즌에 불꽃을 태워올렸다. 1975-76 시즌에 샹클리가 해낸 것과 같이 리그 우승과 UEFA 컵 우승을 동시에 차지한 것. 당시 페이즐리의 팀은 '마이티 마우스'라고 불리던 날카로운 골잡이 [[케빈 키건]]과 창의적인 플레이를 펼치던 [[스티브 하이웨이]], 그 아래의 [[테리 맥더모트]]를 앞세워 강력한 스쿼드를 구축하고 있었고, 치열했던 리그 경쟁을 이겨낸 것에 이어 UEFA컵에서도 [[클뤼프 브뤼허]]를 총합계 4:3으로 꺾으며 4년 만의 더블을 달성한다. 이는 페이즐리의 감독 커리어 첫 리그 및 유럽 대항전 우승이었고, 팀에게는 '''9번째 리그 우승''', '''2번째 UEFA컵 우승'''이었다. 이 시즌 페이즐리는 잉글랜드 리그 올해의 감독상을 수상하였으며, 이 두 번째 시즌을 기점으로 본격적으로 잉글랜드를 넘어 유럽을 정복하는 절정의 전성기를 이룩하게 된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bobliverpool1.png|width=100%]]}}} || || '''클럽 역사상 처음으로 [[유러피언 컵|{{{#fff 빅이어}}}]]를 안필드로 가져온 감독''' || 이어진 1976-77 시즌, 페이즐리는 가뿐하게 채리티 실드를 들어올린 후 팀의 '''10번째 리그 우승'''을 차지한 것에 이어 '''클럽 역사상 처음으로 [[유러피언 컵]] 우승'''에 성공한다. 샹클리가 염원했지만 재패하지 못했던 유럽의 왕좌를 페이즐리가 드디어 정복하게 되었던 것. 로마에서 열린 유러피언 컵 결승전에서 우승하며 이 시즌 더블을 또 다시 이룩한 페이즐리는 FA컵에서도 결승전에 진출하며 잉글랜드 구단 역사상 첫 트레블에 가까이 다가섰으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결승전에서 1-2로 패배하며 아쉽게 더 큰 업적을 달성하지는 못했다. 시즌이 끝난 후 그는 잉글랜드 리그 올해의 감독상을 2연속으로 수상했다. 페이즐리의 리버풀은 이제 명실상부 유럽 최고의 팀으로 거듭나고 있었으나, 시즌 후 다른 도전을 위해 [[함부르크 SV]]로 이적한 [[케빈 키건]]의 공백을 메워야만 했다. 그리고 이 때, 페이즐리는 역사에 길이 남을 이적 시장을 보내게 되는데, 이후 리버풀의 레전드가 되는 [[앨런 한센]], [[그레이엄 수네스]]에 이어 [[셀틱]]에서 뛰고 있던 [[케니 달글리시]]를 영입하는 역사적인 여름을 보낸 것. 이어진 1977-78 시즌, 그의 리버풀은 채리티 실드를 2연패한 후 리그와 국내 컵에서는 준우승에 그쳤으나 달글리시와 영입생들이 잉글랜드에 도착하자마자 키건 이상의 활약을 선보인 까닭에 사상 첫 '''UEFA 슈퍼컵 우승'''에 이어 역사적인 '''유러피언 컵 2연패'''를 달성한다.[* 유러피언 컵을 2연속으로 우승한 최초의 영국 팀이 되었다.] 이 시즌의 성적으로 그는 유럽 기자 협회로부터 올 시즌의 유럽 리그 감독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페이즐리는 이어진 1978-79 시즌, 유러피언 컵 쓰리핏을 노렸으나 이른 탈락의 고배를 마셨고 FA컵에서도 준결승에서 맨유에게 발목을 잡혀 지난 시즌에 비해 아쉬운 성적을 거두었다. 하지만 이 시즌 리그에서는 시즌 내내 압도적인 페이스를 유지하며 완벽한 리그 운영을 보여줬는데, 그는 무려 42경기에서 16실점밖에 하지 않는 경이로운 수비력의 팀을 구축하며 여유로운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홈 경기 무패 및 홈 4실점.] 그의 감독으로서 세 번째 리그 우승이자 팀의 '''11번째 리그 우승'''이었다. 리그 성적에 힘입어 그는 이 시즌 본인의 세 번째 잉글랜드 리그 올해의 감독상을 수상했다. 1979-80 시즌에도 페이즐리는 강력한 스쿼드를 유지했고, 그는 채리티 실드를 우승한 후 신들린 리그 운영 아래 팀의 '''12번째 리그 우승'''이자 리그 2연패를 달성했다. 이 시즌은 당시 18세의 [[이안 러시]]를 영입한 시즌으로도 유명하다. 이 시즌이 끝난 후 그는 본인의 4번째 리그 올해의 감독상을 수상했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bob-paisley-obe_27.max-740x444_1.jpg|width=100%]]}}} || || '''유러피언 컵 최다 우승 감독으로 명성을 떨치다.''' || 1980-81 시즌, 페이즐리의 지도 아래 달글리시와 러시는 호흡을 맞춰나갔고 그의 팀은 채리티 실드를 2연패하며 계속해서 클럽의 전성기를 이어 나갔다. 비록 이 시즌 그의 리버풀은 리그에서 너무 많은 무승부를 기록하며 16년 만에 최악의 성적인 5위를 기록하고 말았지만 컵 대회 성적은 매우 걸출했는데, 그는 이 시즌에 팀 역사상 '''최초의 EFL 컵 우승'''을 차지한데 이어, [[레알 마드리드]]를 결승에서 1-0으로 꺾으며 무려 '''3번째 유러피언 컵 우승'''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당시 유러피언 컵을 3회 우승한 감독은 역사상 전무했기에 페이즐리는 '''유럽 축구사 최초로 3차례 빅이어를 들어올린 감독'''이 되었다.[* 2014년에 [[카를로 안첼로티]]가 타이를 이루기 전까지 페이즐리는 '''33년간 단독으로 최다 빅이어 보유 감독'''이었다. 이 기록은 2022년 안첼로티가 4번째 빅이어를 들어올리며 41년만에 추월되었다.] 역사적인 세 번째 빅이어에 힘입어 그는 1981년 유럽 올해의 감독상까지 수상한다. 이어진 1981-82 시즌, 페이즐리의 믿음직스러운 수문장이었던 [[레이 클레멘스]]가 팀을 떠났으나, 그의 팀은 훌륭한 스카우터진을 보유하고 있었고 대체자로서 [[브루스 그로벨라]]를 영입하여 팀을 공고히했다. 하지만 본격적인 시즌에 들어서자 팀은 어쩐지 부진하기 시작했고 그는 골머리를 앓게된다. 이 때 페이즐리는 특단의 조치로 팀의 주장직을 [[필 톰슨]]에서 [[그레이엄 수네스]]에게로 넘기는 등 팀의 분위기를 쇄신하는데 힘을 썼고, 이러한 노력이 효과를 보아 팀은 다시 반등하며 2년 만에 리그 우승을 탈환할 수 있었다. 팀의 '''13번째 리그 우승'''이자 페이즐리의 다섯 번째 리그 우승이었다. 이 시즌 리버풀은 유러피언 컵 연패에는 실패했으나 리그컵은 연패에 성공하며 팀의 '''2번째 리그 컵 우승'''을 달성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시즌 그의 팀은 직전 시즌 유러피언 컵 우승 팀의 자격으로 참가한 [[인터컨티넨탈 컵]]에서는 패배를 맛봤는데, 리버풀은 도쿄 원정을 떠나 음주가무를 즐기는 등 경기 대비를 제대로 하지 않았고 결국 [[지쿠]]가 이끄는 브라질의 [[CR 플라멩구]]에게 3:0으로 패배하며 세계 축구 정복에는 실패했다. 하지만 이 시즌 페이즐리는 본인이 왜 잉글랜드 최고의 감독임을 또 다시 증명했고 본인의 다섯 번째 리그 올해의 감독상을 수상했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bobsmilkcup.jpg|width=100%]]}}} || || '''밥 페이즐리의 마지막 트로피였던 1983년 리그 컵''' || 이후 페이즐리는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헌신해온 리버풀을 떠날 결심을 굳힌다. 1982-83 시즌, 페이즐리는 마지막 한 시즌을 치른 뒤에 감독직을 내려놓겠다며 은퇴를 예고했고 이 시즌은 결국 페이즐리의 감독 커리어 마지막 시즌이 되었다. 이 시즌에 리버풀은 채리티 실드를 우승한 뒤 계속적으로 리그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면서 '''14번째 리그 우승'''으로 리그 2연패를 달성했고, '''리그 컵 3연패'''까지 이루면서 페이즐리의 마지막을 화려하게 축하했다. 이 시즌 리그 컵 결승이 열린 1983년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리버풀 선수들은 페이즐리에게 존경의 마음을 담아 그가 트로피를 받으러 가장 먼저 계단을 오를 수 있도록 양보했고, 항상 선수들 뒤에서 트로피를 축하했던 페이즐리는 본인의 커리어 마지막 컵 트로피를 가장 먼저 들어보이며 리버풀 팬들에게 감동적인 순간을 남겼다. 커리어 마지막 시즌, 페이즐리는 자신의 여섯 번째 리그 올해의 감독상을 수상하였고 박수를 받으며 명예롭게 축구계를 떠났다. 은퇴 시즌까지 총 44년을 리버풀에서 보낸 그의 나이 63세였다. 페이즐리의 리버풀 커리어 통산 전적은 535전 308승 131무 96패[* 승률 57.57%].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